고요한 빛의 일렁임
2025. 8. 23.

 

소음 사이에 홀로 고요한 류나인. 시끄러운 말소리 속에서 묵묵히 글을 써내려가는 류나인. 무채색의 세상에서 오직 한 명의 색만 볼 수 있다는 감각은 제 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모를 눈에 밝은 빛이 스며드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5! 

 인파의 외침이 제 귀를 뚫고 들어온다. 올 한 해에 대한 소감과 내년에 대한 감사의 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4!

  그러나 저들 중 그 누구도 저보다 큰 변화를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은 본디 무언가를 섣불리 단정짓는 사람이 아니다. 

 

 

 3! 

 그러나 사랑과 애정에 대한 타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하게 된 그의 한 해보다 더 극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2!

 저들은 각자의 무엇을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걸까. 

 

 

1! 

  나는 오직 너를 위해 이 자리에 있고.

 

 

뎅 - 뎅- 

 고대하던 종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묵여청이 류나인을 내려다보던 2019년의 모습에서 바뀐 것은 없다. 

 

 매개체를 통해서만 듣던 그 소리가 직접 제 귀를 울리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이 몰리는 것에 대한 이유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하지만 제가 이 소리를 고대해온 것은 고작 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수도 없이 머리에 그려왔던 상황. 그 시간과 장소에서 너는 제게 복을 기원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글쎄요, 형. 발신인과 수신인이 잘못 된 것 같은데.

  묵여청은 흩어지는 인파 속를 따라 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꼼질대는 손을 세게 쥔다. 일전에 뒤로 미뤘던 손가락을 얽는 일을 실천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사라지고, 새해의 여운을 즐기는 몇몇 만이 남아 있을 그 때에 청은 허리를 숙였다. 고요 속에 섞이는 자그마한 소음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그 어떤 핑계도 내 진심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발개진 네 귀 끝에 제 입술의 온기를 밀착시킨 녀석은.

 

 " 사랑해요, 형. 작년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하고 있어요. "

 

 작게, 그러나 네게만은 확실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손바닥을 맞댄 채로 깍지를 쥐었다가, 폈다가. 결국에는 이전보다도 훨씬 세게 네 손을 옭아매고는. 

 

 " 올해도, 내후년에도 사랑할거에요. "

 

 손가락으로 네 손등을 간질이며 말한다. 거절의 말을 들어도 상관 없다. 네가 나를 불편해 해도 상관 없다. 나는 언제까지고 한결같은 감정으로 네 옆에 남아 있을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다. 내 갈증을 없애줄 사람은 너 밖에 없으니까.

 우정을 확인 받을 자신은 있었지만, 사랑으로 돌려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 분위기에서, 어쩌면 네 꿈에도 그대로 나왔을 한 장면에 물들지 않는건 제아무리 검은 묵여청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밝은 색에 물든 청의 마음이 일렁였다. 알 수 없는 것에 동해 마음을 움직인 청은 귓가에 밀착시켰던 입술을 떼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사부작거리는 소리와 질척이는 소리가 네 귓구멍을 파고 들었을 테다. 비어있던 한 손은 목도리에 파묻혔던 네 볼을 감싸고, 제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 

 아, 류나인의 색이다. 류나인의 눈빛이다. 오래토록 제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망설임과 주저함은 그 마주침 한 번에 자리를 내주었다. 새로이 제 마음에 들어찬 호기심과 기대감을 주체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청은 건조한 입술을 움직여 틈새로 말소리를 흘려보냈다.

 

" 그러니까 형도 저를 사랑해줄래요. "

 

제안, 부탁, 질문. 형식은 중요치 않다. 

묵여청은 그저 바랬을 뿐이다. 

류나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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