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어, 형.”
나는 입꼬리를 당겨 환하게 웃어보였다. 영정사진 속 백범일이 고맙다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형수될 사람이라고 했던 20대 중후반의 여성도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눈을 접어 그 쪽에도 자그마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뒤를 돌아 그들에게 후련한 작고를 고했을 때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자. 자연과학 강의를 하나 시작하겠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생물인가. 가장 처음 지구에 나타난 단세포 생물인 원핵 생물에서부터 시작해, 최초의 다세포 생물 에디아카라 동물군을 거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생명체의 결정체. 약 39조개의 세포가 매 초마다 1000만개씩 변화하며 200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생명체. 그것이 곧 인간이다.
그렇다면 천문학 강의로 넘어가자. 우주란 무엇인가. 천체 전체 범위에서 “최초”와 “결정체”는 당사자 변동성을 가진다. 기본적인 너비가 10만 광년인 은하들이, 관측 가능한 수준에서 약 2조개가 모여있는 이 우주에서,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거대한 은하 속에서 우울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미련한 짓이다. 이 막연한 거대함이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자신할 수 있지? 우린 그 거대함을 발 밑에 둘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내 뒤에 작게 남은 그림자 따위에 미련을 가지는 건 멍청하다.
“후… ….”
하지만 그림자는 종종 물리 법칙을 벗어나 내 발목을 옭아맸다. 이런 물리 법칙을 역류하는 현상들이 바로 인간의 가장 피로한 점이다. 나는 내가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물리 법칙과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방정식으로 도피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평생 이루지 못할 숙원을 형을 통해 봐왔다는 것도.
한 평생 빈 깡통 같이 살아왔다. 내게는 그런 공허함이 당연했기에 인간의 본질을 텅 빈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책에 코를 들이박은 순간이 아닌 이복 형의 따스함을 받고서. 그제서야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완전히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따스함이 무심결에 좋다는 걸 깨달아서인지 꼭 어미를 낙인 찍은 새끼 오리 같이 형을 흉내냈다. 그러나. 평행선이었다.
그 낙인은 과연 축복이었나?
인간의 본질에 다가간 동시에 나는 몰랐던 감정을 하나 알게 되었다. 갈증.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목이 타는 듯한 갈증.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느낀 이유는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형이 아니었다면. 형만 없었다면. 나도 내가 이렇게 공허한 인간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거야. 모두에게나 친절한 사람을 표방하지만 속은 하나도 없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그 어떤 유감도 느끼지 못하는 빈 껍데기같은 인간이란 걸 모르고 살았을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살다 어느 순간 가슴을 쥐어 뜯으며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는. 쌓아왔던 벌을 받는 듯한 그 타는 듯한 괴로움을 평생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고.
“ … … . ”
내게 그 선악과를 먹인 뱀은 누구였지?
나의 글러먹은 본질을 알려주고 진창에 빠트려 유일한 숨구멍마저 앗아간 뱀 새끼가 내 곁에 있었어. 그 뱀이 나를 유혹에 빠뜨렸어. 내게 수치심을 알려줬어.
“하하, 그래. 태환웅.”
날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어딜 가려고, 개새끼야.

백범규
31 한국 183 표준-3 무기 개발자
| 완벽 | 천재 | 영민한 |
| 가면 | 도덕성 결여 | 집요한 |
| 나는 당신 위에 서 있다 | 갈망 |
-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전 세계 천체 물리학 석박들 사이 가장 뜨거운 감자.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천재 물리학자. 베이징 대학교 천체물리학과와 기계공학과 복수 전공.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 대학원에서는 항공 우주에 대해 연구했으며 졸업 논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 동시에 모든 방산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 우주 탐사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무기 개발에 흥미를 느낀다. 공공연하진 않지만, 암암리에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그렇지 않고서야 전 세계 제일 가는 방산기업 CEO 태환웅이 가장 보안이 삼엄한 곳에서 싸고 있을 이유가 없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에서 시작한 연이라고 알려져 있다.
- 대체로 태환웅이 마련해준 연구실, 그리고 집에서 연구와 설계에 몰두한다. 하지만 강의 출강이나 세미나 참석, 학회 발표 등 공식 석상을 꺼리지 않는다. 다만 TV 등 영상 매체 출연은 꺼리는 편.
- 반듯하게 생긴 얼굴, 큰 키, 유려한 말솜씨, 깔끔한 정장 차림과 댄디한 사복 패션 센스. 학자들이 갖추기 어려운 것들을 모두 만점으로 해냈다. 밤을 새는 날이 많기에 매일은 못하지만 운동도 꾸준히 습관적으로 하는 편. 어릴 적 태권도 3단을 땄고 꾸준히 하고 있다. 사교성도 좋은 편으로 주변 평판이 좋다. 얼굴은 꽤나 예쁘장하게 생견 편인데 본인은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 군대 문제는 전문 연구 요원으로 해결해 커리어에 공백이 없다.
- 방산, 우주공학, 천체 물리학 중 어떤 것을 중심적으로 연구하고 싶냐는 흥미가 가는 쪽으로 연구할 뿐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한다. 3-4개 국어에 기업 경영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떠한 목표와 야망이 있는 듯 한데, 알려진 바는 전혀 없다.
완벽의 비결
- 타고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소시오패스.
- 하지만 이복 형에게서 좋은 영향을 크게 받아 일상을 굉장히 무탈하게 지낸다. 어릴 적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세 살 터울 형인 백범일이 생겼다. 워낙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 친형제와 진배 없는 사이. 범규와 닮지도 않고, 특출나게 잘난 점도 없으며, 평범하기 그지 없는 형이었으나 열등감 하나 느끼지 않고 범규를 아꼈다. 범규도 그에 감화되었는지 유독 형을 많이 따랐다. 대학 시절까지는 다소 차가운 면이 있긴 했으나 유독 형 앞에선 살가운 동생인 척 굴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 얼마 전 형과 형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흠결
- 아무리 감화가 잘 되었다 한들 사람인 이상, 더군다나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인간이기에, 임계점을 넘으면 굉장히 힘들어한다. 혼자 있을 때는 대부분 무표정. 감정이 거의 없다.
-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로맨스 영화에도 공감하지 못할 정도. 가족 간의 관계를 다룬 영화에도 반응이 없으며 형이 죽었을 때도 그닥 슬퍼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아무런 욕망도 없으나, 지겹도록 듣는 연애와 우정에 관한 질문으로 인해 인간에게 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골이 나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탐구욕과 오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유감이 섞인 더러운 감정이다.
- 자연스레 연애 경험도 전무. 성적 경험도 전무. 사회 생활에선 피곤해 허상의 애인을 지어낸다. 이 역시 욕심은 전혀 없다.
- 자신이 이 사회에서 툭 튀어 나와있는 퍼즐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대체로 큰 유감 없으나 필연적인 고독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아주 드물게 고독에 심하게 사로 잡혀 앓을 때가 있다. 공황의 일종일지도.
- 위와 같은 이유로 비슷한 성향의 태환웅에게 알게 모르게 위로를 느낀다. 대학 시절 그렇게 다투었음에도 아직까지 살 부대끼며 같이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제멋대로 굴고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데다 제가 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것 모두가 증오스러우나…, 범규가 쉬이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본인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으나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