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모음
2025. 9. 10.

 

 

야, 내가 왜 바보냐?

니가바보가아니면누가바본데이미친현이진아. 씨익씨익. 박율의 머리 위로 나오는 스팀을 누군가 볼 수 있었다면 그런 효과음을 붙이지 않고선 못 배겼을거다. 만화처럼 어깨 들썩거리는 효과선도 넣어주고, 얼굴은 굳이 벌겋게 칠할 필요도 없을만큼 새빨개진 박율은 현란한 젓가락질로 입 안에 고기를 다섯점 욱여넣었다. 그리고 와구 와구 씹었다. 동창 놈 어깨에 기대들어져서 저런 소릴 하고 있는 현이진을 노려보면서.

그러니까, 현이진은 정말로 바보가 맞다. 중학교 때 내가 자길 좋아하는 걸 안 믿은 것도 그렇고, 지금 내가 잘 좋아 … 좋아 … 하, 씨발. 좋아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그렇다. 나는 정말로 티를 많이 냈다고 생각했다. 제주도 합숙 훈련에 갔을 때도 술 퍼먹는 대신 재랑 전화했고, 쟤가 늦게 들어온다고 할 때마다 매번 데리러 나갔다. 그리고, 그, 뭐, 몸도 섞고. 같이 살기도 하잖아. 주말에도 내내 붙어있고. 그런데도 모르는데 그게 어떻게 바보가 아니라는 말인가.

미친 … 박율 고기 열다섯 점 돌파. 옆자리 이윤탁이 고개를 저으며 격식있는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와중에도, 현이진은 해실 웃으면서 술병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야. 좋냐? 좋냐고. 동창 어깨에 기대서 부비적거리니까 좋아? 박율은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맥주를 들이부으며 저 아래로 내려버렸다. 그리고 젓가락을 쾅! 내려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사실은 속을 삭히는데 실패했다.

야, 현이진. 너 내일 수업 있잖아. 가자.

율은 기다란 팔을 뻗어 현이진의 손목을 잡아챘다.상남자 특이라며 요상한 추임새를 넣는 동창놈들의 놀림과 칭얼대는 현인진의 목소리가 섞였다. 고깃집의 요란한 소음까지 더해지니 귀가 먹먹했다. 그러든 말든. 율은 이진을 억지로 등에 업고 일어섰다. 야, 정산은 카톡으로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식당 문을 나섰다. 촉촉한 밤공기가 뺨에 닿으니 속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응얼응얼. 여전히 귀에서 시끄러운 이진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율은 한숨을 쉬었다. 제발 그만 좀 해. 더 뜨거워질 곳도 없는데 낮이 더 뜨거워지잖아. 모난 눈을 하며 말을 참던 율이 결국 한 마디를 토해냈다.그리고 이진을 고쳐안았다.

바보야. 멍청아. 니 주위를 좀 보라고.

 


 

토끼야.
끝이 살짝 늘어지는 부름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바보처럼 실실 웃는 얼굴을 들여다보다 도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누구는 심란해 죽겠는데 천진하게 웃기나 하고. 아랫입술을 비죽이며 속으로 온갖 불평을 다 늘어놓았다.
제발 이런 거에 흔들리지 말자. 박율이야 원래 저런 놈이니까. ……아니, 생각해보자면 호구 같은 면이 있기는 해도 저렇게 아무데서나 실실거리는 놈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는 건 내 앞에서 유독 저런다는 말밖에 안 되는데. 머리를 감싸쥔 채 앓는 소리를 내자 곧장 두툼한 이불을 사이에 두고 바로 곁에서 걱정 어린 투가 샌다. 그게 지독하게 알미운데 밉지만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불보를 잡아당기는 힘에 저항않고 손을 놓으면 이내 시야가 밝아지고, 그새 울상이 된 얼굴의 코앞에서 아른거린다. 왜애.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뻔뻔하게 되물으며 손끝으로 콧잔등을 톡 건드렸다. 내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탓인지 금방이라도 기침이 나올 것처럼 목구멍이 간질거리는데, 혀끝에 맺힌 말이 함께 터져 나올까 입술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바보 같은 박율. 손끝은 이미 샛노랗게 물들고도 남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물들어야 만족할 작정인지. 이러다 네 토끼 노래지겠어. 퉁명스러운 어투에 어리둥절해진 박율이 또 두 눈을 둥그렇게 뜬다. 이해 못한 게 틀림없다. 아마 죽어도 모를걸. 몰랐으면 좋겠다. 원래 이런 건 내가 아니라 박율 몫이니까.

 


 

난 이 감정이 싫다. 정말 싫다. 끔찍해 죽을 지경이다. 다이어트 하는 놈들이 허구한 날 달고 사는 말처럼, 아는 맛이 무섭다. 시작은 호기심. 그 다음은 질투. 그리고 그 다음은 설렘. 그리고 닿기만 해도 짜릿한 지경까지 오면 … 박율의 짝사랑 완성. 한숨을 쉬고 두꺼운 손바닥 아래에 얼굴을 숨겼다. 답답하고 좁은 이 공간 속에 들어오면 그제야 일그러진 울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MT 간 현이진이 없는 이 집이 오히려 달가운 건 정말 중증이다. 내 피부에 붙어있을 일은 없으니 꼬시지도 못 할테니까. 그런 텅 빈 집안에서 굳이 굳이 얼굴을 가리는 이유는 … 또 보고 싶으니까. 그거 조금 떨어져있으니 또 보고 싶은 게, 중독도 아니고 그냥 불치병이다 싶어서. … 진짜 존나 짜증나! 저 멀리 있으면서도 사람 꼬시는 걸 보면 현이진이 박율 꼬시는 재주 하나는 제대로 타고났다. 박율은, 현이진 꼬시는 재주가 하나도 없고.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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